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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 여행 가고 싶어. 그래서 갔다 올까해

에어컨의 성능이 좋지않아 공기가 눅진한, 선풍기가 쉭쉭~ 돌아가는 식당안..
순두부찌게 위에 빨간 거품을 걷어내며 여자가 말했다.
마주 앉아있던 남자는 여자의 어깨뒤로 보이는 작은 TV에 눈길을 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 그래, 그럼 어디 갔다오지 뭐

그 말에 여자는 채 밥을 뜨지도 않은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 아니, 그런거 말구. 나만.. 나 혼자 여행가고 싶다고.

그 말에 남자는 순간 고개를 급히 들었다.

- 너 혼자..? 너 혼자? 어디?

여자는 대답대신 한참동안,
나는 지금 망설이고 있어.. 라는,
쉽게 말하는거 아니야..
그리고 장난도 아니야.. 라는,
그런 의식적인 표정을 남자에게 충분히 보여 주었다.

그리곤 말했다.

- 아직 결정은 안했어. 그냥.. 니가 없는데로 갈까해

그녀가 말했다.

나를 두고 혼자서만 여행을 가고 싶다고,
내가 없는데로 가고 싶다고,
남자는 멍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이곳은 식당이다.
우린 막 '괴물'이란 영화를 봤고, 배가 고파서 아무렇지도 않게
식당에 들어왔고, 순두부찌게를 시켜 막 밥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식당안은 상쾌하지 않고, TV에선 드라마를 재방송하고 있고,

그리고 그녀가 말한다.

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남자는 혼자서 어떻게든 상황을 맞춰보려 애를 쓰다가 그만 정신을 놓고
바보처럼 물어버린다.

- 왜?

왜.. 라고.

여자가 되물었다.

- 넌.. 지금 우리가 행복하니?

그건 너무 어려운 질문.
남자는 당연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밥그릇 위를 맴도는 파리를 내치지도 않은채 침묵이 한참 흘렀고,
남자는 결국 다른 질문을 하는 것으로 침묵을 깼다.

- 그럼.. 갔다가 오기는 올거야?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사람이 사랑했는데 그중 한 사람만이 권태를 느꼈다는게 가능한 일일까?
그중 한사람만이 행복하고, 다른 한사람은 그렇지 않다는게 가능한 일일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내게 묻는다면,

'넌 지금 우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나는 뭐라고 대답할수 있을까?
너는 나를 두고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냐고..
너는 나로 인해 행복하냐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애쓴 기억이 언제였냐고..



이별에서 아슬하게 빗겨 있을뿐 우리의 사랑은 이미 다 식지 않았냐고..



사랑을 말하다.
푸른 밤 그리고 성시경입니다. 中..